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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단지

풍력발전단지 "해 따라 물 따라 바람 따라 동해에 서다"~ 해와 바다와 바람, 이 좋은 세 가지 자연의 은총 외 동해에서 더 이상 우리가 누리고 싶음이 있을까?

블루로드를 대표하는 영덕의 바닷길에서 만나는 어느 전망, 어느 곳인들 넘치는 바람이겠지만 이 바람의 정체를 만나고, 바람의 노랫소리를 정면으로 맞을 수 있는 제일의 장소는 바로 이곳인양 싶다. 이쪽저쪽이 다 바람이다. 너무나 방대하기에, 너무나 펼쳐져 있기에, 너무나 시원하기에 이렇게 이름 지을 수 밖에 없었겠지만, 만약 내게 이곳에 올라 이름을 지으라했다면 나는 아마도 "바람의 꼭대기에서 만나는 풍차정원" 이라는 조금 정감어린 표현을 썼을 것이다. 바람의 꼭대기 또는 바람마루를 마주하는 순간...

바람은 목표가 없다. 시도 때도 없고, 예고도 없고 미련 또한 없다. 그래서 바람인거다. 한여름 뙤약볕 마저도 이곳에서 부는 바람 앞엔 장사 없이 누구나가 시원해진다.

너나없는 바람, 지천에 널린 바람... 동해 블루로드에서 만나는 바람은 동햇가에 널린 빨래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닷가에 널린 빨래는 참 예쁘게도 춤을 춘다.. 아파트 베란다에 빼곡이 내다보며 다닥다닥 알미늄 3단 빨래줄에 켜켜히 널려, 작은 햇빛에 웅크린 채 조금씩 말라가는 빨래와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태극기도 아닌데 펄럭펄럭 인다~ 언제 저 푸른 동해 창공으로 휙 날아가 버릴지 모르게 아슬아슬 춤을 춘다.

해와 바다와 바람, 이 좋은 세 가지 자연의 은총 외 동해에서 더 이상 우리가 누려야 할 것들이 있을까? 블루로드를 대표하는 영덕의 바닷길에서 만나는 어느 전망, 어느 곳이든 이 셋을 다 만날 수 있다 해도, 바람의 이 정체를 만나고, 바람의 노랫소리를 정면으로 맞닥뜨릴 수 있는 곳은 아마 이곳이 제일인 양 싶다.

4기의 풍차돌이(풍력발전기)들과 마주한 영덕의 바람, 태평양발 마파람이 영덕의 바람꼭대기에서 춤을 추는 전경이란... 처음은 가슴이 탁 트인다, 그 다음은 손을 뻗치면 금방 닿을 듯한 하늘과, 어느 곳을 올려다 보아도 세 갈래로 힘차게 뻗히어 돌아가는 해를 닮은 풍력발전기들... 구름의 색을 닮아서일까? 하늘을 향한 모습이 너무나 조화로워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어왔던 자연의 일부분만 같다.

이곳에 오면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창포말 등대 아래 바닷가를 아우르는 해맞이공원의 산책로를 마감한 후 해안도로를 거쳐 살살살 오르면 영덕풍력발전단지가 이내 와 닿는다.

24기의 풍력발전기가 참으로 공평하게 나뉘어 돌아가는, 산이라 하기에도 평원이라 하기에도 뭔가 부족함이 감도는 이곳은 신재생에너지전시관과 해맞이 캠핑장, 10여개 공군조정기가 전시된 항공기전시장과 너른 축구장(야간조명시설까지 갖춘), 야외공연장 등이 광활한 땅을 사이좋게 나눠 쓰고 있다. 또 각기 특색을 살려 '바람정원', '하늘정원', '바람개비공원', '어린이공원' 등이 친근한 명칭과 그 이름에 걸맞는 형태로 잘 가꿔져 멋진 바람산책로를 열고 있는 것이다.

풍력발전을 위한 장치가 마치 어릴 때 바람개비 돌듯이 돌고 있어 이국적 낭만에 젖어들게 한다. 이 발전 용력으로 영덕군민 1년 쓸 전력을 생산 한다니 무공해아닌가.

또한 이곳은 고산 윤선도를 비롯하여 신득청, 이유헌 가사문학비까지 있어 영덕의 대표 문학을 아우르고 있는 거대한 문학 정원이 되기도 한다. 단지 내에 들어서자면 맨 먼저 기품과 얼이 서린 고산 윤선도의 시비를 마주하게 된다.

고산 윤선도 시비

"지난해 중추에는 남해에 있으며
수운이 저물녁 모첨에서 달을 맞았네
어찌 알았으랴 이 밤 동해바닷가에서
달빛 마주한 채 옛 동산 그리워할 줄~"

보름달이 뜨는 날 펼쳐지는
동해안 달맞이 야간산행 행사가
그 옛날 선현의 감흥을 몇백년 후에
이리풀어낼 줄을 어찌 알았으랴..

신득청 가사문학비

신재생에너지관으로 넘어갈라치면 여기서도 하나의 시비가 먼저 맞이한다. 신득청 가사문학비-역대전리가.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 신득청선생은 고려 충숙왕때 이곳 창수면 인량리에서 태어나, 평산부원군까지 지낸 인물로, 고려말기 왕의 실정을 간언하고자 이곳의 '역대전리가'를 지어 올렸으나 조정은 더욱 혼란지색에 빠진다. 벼슬을 버리고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온 선생은 고려 멸망을 듣고 동해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해 버리고 만다. 그가 남긴 이 역대전리가는 한국문학사에 있어 가사문학작품의 효시로 재조명되어 그의 우국충정과 함께 칭송되고 있으며, 나옹왕사와 함께 영덕이 가사문학의 본산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는 귀한 가치인 것이다.

역대전리가

"나라 세워 다스려 사직을 편안히 함은
앞 시대 나라를 일으킨 임금 같고
나라를 어지럽혀 사직을 강하게 함은
앞 시대 못난 임금과 같도다"

찾아오시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