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의 소리가 모두 묻혀 고요한 길....
펼쳐진 모든 것들은 그저 바다뿐 인 이 길 위에서 마음의 고요를 되찾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나와 자연뿐이다.
해맞이공원에서 바닷가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작은 산을 하나 넘으며 블루로드 제B코스 대장정에 오른다. 블루로드 가운데 가장 많은 바닷길이요, 그래서 타이틀마저 “환상의 바닷길” 이자, “바다와 하늘이 함께 걷는 길”이다. 파도소리 따르며 숲 속도 지나고 갈대숲도 지나다 보면 해안 바위산 앞에 당도한다.
우리네 인생길이 그러하듯 블루로드 길도 때론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인다. 길에서 양 갈래 길을 만나면 그것은 잠시 쉬어가도 좋다는 신호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정신줄 놓지 말라는 경고의 뜻도 된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오다가는 자칫 갈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리의 인생도 이러하지 않나~ 쉼 없이 눈앞의 것들에만 몰입해 달려 가다보면 한번 씩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삶의 방향을 잃은 듯 혼미해 질 때가 있다. 때론 옆도 둘러보고 때론 내 지나온 자취도 훑으며 여유 아닌 여유를 부려야 하는 게 인생행로이지 않나.
이렇듯 길 위에선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일상의 길이 아닌, 내 딛는 길 양쪽으로 망망대해와 숲이 길동무되어 함께 가는 이런 길, 바다와 산을 양 옆으로 평행선 지어 걷고 걷는 길 위에선 말이다. 굽어지면 굽어지는 대로, 곧으면 곧은 대로, 길이 안내하는 대로 오로지 나를 맡길 수밖에 없다. 자연이라는 크나큰 선택 앞에 던져진 일개 자아인 나의 존재가 너무도 미미하다는 느낌과, 한편으론 이 크나큰 자연의 무대 위에 오롯한 주인공으로서 내가 놓여 있다는 느낌도 함께 말이다. 선택은 늘 우리 생의 매 순간순간 마다 찾아온다. 여기서도 예외는 아닌지... 경치에 반해 한시름 쉬었다 갈 것인지 길의 목표대로 빠른 걸음으로 이어갈 길을 재촉할 것인지를 매번 선택하여야 하니 말이다.
인공의 소리가 모두 묻혀 고요한 길... 펼쳐진 모든 것들은 그저 바다뿐인 이 길 위에서 마음의 고요를 되찾는다. 오로지 나와 자연뿐이다. 혼자 걷는 길이라면 조금 무서울 수도 있지만 한없이 평화로울 수도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가 바달 향해 뛰어들 몸짓을 하고 있다. 그 어떤 글로도 어떤 뛰어나게 잘 나온 한 장의 사진으로도 이 감상의 전부를 표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마음을 만나는 길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작은 포구하나가 나타난다. 이제 막 채비의 옷을 입으려하는 이름도 표지도 없는 자그마한 곳... 흐르는 땀도 땀이려니와 바다색에 한 번 더 놀란다. 계곡물도 아닌데, 청록색 -다슬기 색을 띈 바다, 바다는 여름의 자연숲보다도 더 뚜렷한 녹색을 지녔구나~ 멀리 있는 바다는 하늘색을 담았고,가까이 마주한 바다는 진초록 산(숲)을 담고 있다. 바다는 이렇듯 여러 색깔로 나를 맞이한다.
오로지 걷는 이만이 느낄 수 있는 걷는 이 만의 바다인 것이다. 이름없는 포구에서 어여쁜 남근장승을 만난다. 어촌사람들은 예부터 뱃일을 나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흔하여 어촌에는 남자가 귀했고, 이렇듯 남근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고 들은 것 같다. 신기하고 재밌는 남근장승들을 뒤로 한 채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친절한 블루로드는 도보 여행자들을 위해 어느 한 곳 빼먹지 않는다. 바닷사람의 넓은 인심을 닮았다.
수많은 바위들을 지나고 또 지나다보면 바위랑 놀고 싶어진다, 이야기 한 자락 나누고 싶어진다. 코주부바위_ 즉석에서 이름을 지어 불러 본다. 코주부바위는 앞서 도망가는 악어바위를 뒤쫓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뒤에서 달려들려 하는 범 바위가 무서워 바삐 도망가고 있는 중이다. 꼬리가 없어 다행이지 말이다. 재빨리 악어바위를 피해 달 걸음 치자니 덩그러니 나타나는 해수욕장 하나_ 외롭다 싶으면 인가요, 자연길이 좀 길다~ 싶으면 도로 위를 걷게 해 주는 블루로드_ 도로 위에선 사람, 차들의 왕래도 만나고, 목 축일 수 있는 매점도 만나니 말이다.
바닷가 어촌이든 해수욕장이든 인가가 있는 해안이면 어김없는 시원한 팔각정자가 있게 마련이고, 여긴 방파제 구실을 함께하는 듯 돌계단이 특색 있는 대탄해수욕장 백사장도, 민박을 겸한 촌마을도 50여m를 넘지 않은 그야말로 아담하고 소박한 어촌마을이다. 작아서 더욱 정겨운 대탄해수욕장을 뒤로하고 다시 걷는다. 블루로드 길은 그 길이의 장대함 때문이라기보다 군데군데 바닷가절경에 몸과 마음을 빼앗기기에 이어가기 다소 어려운 길인지도 모르겠다. 왜 이런 경치들을 두고 걷기만 해야 되는지 수시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오보로 향하는 길은 도로다. 정비가 미비한 도로 길도 더러는 만나야 한다. 군데군데 상점들이 있기에 또 편리한 면도 있다. 오보교를 건너니 다리와 연결된 형태의, 거기가 오보해수욕장이다. 작지만 보트도 대여할 수 있고, 바다 본부도 형성돼 있는 그나마 규모가 조금 있는 오보해수욕장 70여 미터 해안가를 방파제가 비호해 주고 있는 동해 바닷가 해수욕장치고 참 적은 피서객이지만 늘고 있는, 나름의 인기 있다는 곳_ 각종 보트타기에 유리한 해안선이 갖춰져 해수욕이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블루로드 팻말 따라, 이정표 따라, 바닥 표식 따라, 때론 앞서 간 이들의 작은 리본 따라 다시 길을 이어간다. 친절한 블루로드... 채 정비가 덜된 구석들이 있어 미안한 탓인지 행여나 한사람이라도 길을 잃을까, 힘겹게 시작한 이 길을 중도에 포기할까봐 여러 가지 형태로 도보객들을 안내해 주고 있는 블루로드다. 길명은 블루로드인데 안내 이정표는 대부분 희망의 노란색이다. 눈에 잘 띄기도 하려니와 왠지 노란색은 기분이 좋아진다. 해맑은 희망의 색깔 같다.
도로 길을 걸어 노물항에 도착. 돌미역이 유명한 노물항 포구를 돌아돌아 블루로드를 잇는다. 이번엔 바다로 향한다. 빨간 표지등과 바위 곳곳에 걸터앉은 낚시객들이 조화롭다.
세월을 낚아 올리는지 저마다 말이 없다. 이곳은 정화의 손길이 채 미치지 않았는지 바위 뒤편으로 바다에서 떠밀려 온 것 같은 쓰레기들이 곳곳에 눈에 들어온다. 자연에 누가 되는 이물질들은 너무도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해안 블루로드를 선호하는 이들은 작정을 하고 첨부터 뛰어들지 않더라도 노물항으로 들어와 이 길을 걸어 봐도 좋을 것 같다.
한 기둥 한 기둥, 한 계단, 한 계단의 정성도 정성이려니와 블루로드가 훑어가는 이 행선지들은 연달아 감탄지경에 빠진다. 하나의 경치라도 놓칠 새라 영덕의 한곳 한곳을 되짚어가도록 정성스레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는 블루로드. 우리는 흔히 관광명소만 다니는 누를 범한다. 블루로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여행의 진가와 참 의미란 이런 것이라고 모법답안으로 형성해 놓은 길 같다.
영덕의 어떤 곳을 찾았을 때 일단은 블루로드를 찾아라 , 왜냐하면 블루로드가 가는 그 길이 그 지역의 가장 좋은 볼거리 명소일테니, 승률 100%의 게임일 것이 분명하다.
노물에서 석리가는 길이 다소 고단하다. 이 길은 또 특히 해안초소가 많다. 아~ 오랜만에 이정표를 발견. 노물리 방파제로부터 1.3km나 왔건만 아직 석리까지 500여m가 남았다. 자금부터는 도로길이다. 석리로 다시 굽어 내려가는 길...아름다운 어촌마을, 석리다.
이곳은 강구항 대게거리 이후로 두 번째로 도장받는 곳이다. 외진 길 굽어내려가니 시원한 정자와 가족탕 분위기의 아담한 해수풀장이 반긴다. 오다 받은 블루로드 도장을 잘 쟁여 넣는다. 무슨 커다란 훈장이라도 받은 뿌듯함이 깃든다. 내 땀과 감상의 대가인가. 가슴 속에도 푸짐한 무언가를 얻었는데 덤으로 수고로운 길 위에서 포상까지 받은 기분으로 석리를 둘러본다. 규모는 작은 데도 여러 가지 어촌체험들을 잘 안내해 놓았다.
땀에 뒤범벅이된 도보객들에겐 너나할 것 없이 체험을 빙자해 바다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여기까지 와서 지금 발길을 멈추기에는 뭤 하지 않은가. 석리를 뒤로하고 다시 해안가로 향하는 블루로드 철 계단을 오른다. 길은 조금 더 거칠어진 야생의 바윗돌길이다. 아마 블루로드 B코스 가운데 가장 난코스일지 모를 이 길은 자신과의 싸움이 예상되는 길이다. 다듬어지지 않아 내가 만들어가는 길, 누군가가 앞서서 쉼 없이 만들어 갔던 길, 그러나 나에게도 역시 과제로 다가오는 길..
멀리 경정3리 어촌마을이 보인다. 여기서부턴 경정3리-경정1리-경정2리가 뒤섞인 순으로 이어진다. 50여 가구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며 일궈가고 있는 작은 어촌-경정3리. 마을중심엔 오메 향나무가 풍채를 자랑하며 서 있다. 오메불망 물질나간 서방님 기다리다 향나무가 된 그런 사연을 각색해보며 길을 재촉해본다. 바닷가 바윗길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 좋은 경치아래서 지쳐버리긴 정말 싫지 않은가.. 알고보니 오매(烏梅)는 뱃불, 즉 경정의 남쪽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는 옛말이라 한다.
블루로드는 경정 석산 컨베이어를 지나간다. 지금은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산업화시대의 소산인 컨베이어 시설이 흙과 돌을 퍼나르고 있다. 석산컨베이어가 자연미관과 관광객에 더 이상 위해하지 않고 하루빨리 철거되길 바라며 경정1리-경정해수욕장에 와 닿는다.
150여미터 만 같이 굽은 해안이 눈에 들어온다. 빨간 표지등과 하양 등대를 다 갖춘 제법 규모가 큰 항구와 인접한 작은 해수욕장, 경정1리항과 경정해수욕장이다. 규모로 치더라도 1리와 2리를 합친 규모이상인 170여가구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며 큰 마을규모에 걸맞게 제법 큰 배들도 드나들며 마을엔 학교도 운영되고 있다.
마을운영 해수욕장이지만 해마다 만명 정도의 피서객이 다녀간다는 경정해수욕장_ 한국어촌어업인협회 선정, '2009년 알려지지 않은 전국의 해수욕장 100선'에도 선정된 바 있는 괜찮은 해수욕장이다. 수심이 얕아서 어린이들이 놀기에 너무 안성마춤 이어선지 대부분이 가족단위 피서객이란다. 또한 마을에서 운영하기에 여러 시설요금 또한 저렴하다.
어물 채취, 스킨스쿠버 다이빙리조트가 편리하게 운영되고 있는 경정해수욕장과 항을 가로질러서 블루로드로 오른다. 그물내음, 해초내음따라 바다냄새의 진수를 경험하며 바닷길을 이어간다. 경정리는 다소 투박한 길, 야생의 길이다. 아마 목적지가 있다면 마지막 피치를 올리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머얼리 대게원조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넓은 마을입구의 키큰 야생화들과 영덕대게원조마을 표석비에 적힌 글귀를 보면서 마을의 소박한 풍경에 마음 적신다.
대게원조마을... 대게들의 가장 좋은 서식지로서 타 지역보다 맛과 질이 단연 우수한 곳, 또한 타 지역에서 잡은 대게를 들이지 않는 곳_ 원조마을을 지키려는 마을주민들의 의지와 철학이 돋보인다. 직접 잡아들인 대게를 겨울부터 봄까지 횟집에서 팔고, 전국 각지로 배송도 한다.대게철 외에는 오징어나 기타 어종 고기잡이 배들은 항시 운영하고 있고, 여름에는 민박도 하면서 대게철을 기다리는 사람들... 근처엔 돔바위도 있고, 언젠간 저 시원한 팔각정자에 앉아서 원조마을의 대게 맛을 꼭 음미 해보고 말리라.. 다짐하며 마지막 고지를 향해 다리에 힘을 조아본다.
축산항까지 4㎞에 이르는 이 블루로드 길은 '초병의 길' 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바위 위에 설치된 해안초소에서 군인들-특히 초병들이 밤마다 경계근무를 서기 때문이 아닐까. 바다와 인접해 있는데도 숲길을 방불케 할 정도로 거친 이 숲길이 끝나고 모래 길이 시작될 즈음 블루로드는 영덕 최고의 풍경을 그린다. 멀리 축산항과 죽도산의 등대가 보이고 쉼 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갯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진다.
한참을 가다보면 길은 어느덧 현수교에 다다른다. 이곳은 도로 쪽에서 오면 축산항 입구현판 인근의 작은 소공원 (자연보호 헌장탑이 예쁜 바람개비들과 모여앉은)뒤로 나 있어, 경정원조마을에서 축산항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고 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물길 위를 지나는 100여m 다리로 2인정도가 지나다닐 작은 폭에 약간의 출렁거리는 여운도 맛볼 수 있고 중앙부분에 소슬 경관이 아름다운 현수교. 걸어 걸어 죽도산 앞에 이른다. 축산항을 만나기 이전 죽도산에 먼저 오른다. 이곳은 대나무가 많아 죽도산이다. 길을 따라 잘 정비된 죽도산 전망 테크를 걸어 전망대로 향한다.
산전체가 희귀식물이 자생하는 자연생태보고로 각광을 받는 죽도산은 해발 80m 중심부에 하얀 등대전망대가 서 있어, 축산항과 이 일대를 훤히 밝히고 있다. 해국, 산국, 참나리, 섬쑥부쟁이 등의 희귀식물부터 해안가 자생식물들, 바위틈에 피어난 이름 모를 식물-야생초들이 각각의 군락지들을 이뤄 이채롭다. 기인 산책 테크를 따라가면 축산항 일대 대부분의 뛰어난 풍광과 전경이 펼쳐져 동해안 최고의 전망과 낭만적인 기분에 둘러싸인다.
동해안에서도 아름다운 항구로 유명한 축산은 태백산에서 뻗어나온 산봉우리가 연결돼 산세가 해안까지 밀려 내려와 아름다운 해안선을 가지고 있는 곳. 국도 7호(동해대로)와 이어지는 국지도20호 (축산로), 군도 5호(영덕로)등이 어울려 교통의 분산기능까지 담당해 준다. 그 모양과 지세에 있어 동해안에서 제일 가는 미항, 축산항_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다른 항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게 아늑한 축산항은, 국가항이자, 영덕의 2대 항구로 대게원조마을과 함께 최고의 영덕대게 서식지를 자랑하는 곳이다.
죽도산 꼭대기에 올라 걸어온 자리를 내려다 본다. 아득한 미로 속을 걸어온 듯도 하고, 아찔한 바다 바람에 안겨 여기까지 단번에 날아온 듯도 하다. 블루로드 제B코스 환상의 바닷길을 마무리한다. 장장 4시간 반, 15km를 쉼 없이 걸어 왔지만... 자연이 내어준 길, 자연이 인도한 길이었기에 무엇보다 벅차다. 가슴가득 숭고함이 차오른다. 블루로드는 여기서 다시 대소산봉수대를 향하여 C코스로 이어진다.
감히 말하고 싶다. 영덕에서 블루로드를 따라가 보지 않고서 영덕을 안다고, 영덕의 진가를 논할 수 있다고 자부하지 말기를... 영덕의 블루로드, 영덕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영덕의 길_ 내 마음의 길을 걸었다. 환상의 바닷길, 푸른대게의 길(B코스)
블루로드 외 음식 및 숙박시설 문의는 삼가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