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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산 관어대
 

- 관어대부의 서문 - 

관어대觀魚臺는 영해부寧海府에 있으며, 동해에 접해 있다. 바위 아래에 노는 물고기를 셀 수 있는 곳이므로 관어대라고 이름한 것이다. 영해부는 나의 외가外家이다. (하략)

 

블루로드로 정해긴 길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찌 이곳을 오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방 막힌 곳 하나 없이 워낙 풍광이 멋드러져 목은 이색, 운곡 원천석, 죽계 안노생, 점필제 김종직 등 수많은 명사와 시인 묵객들이 올라 찬탄을 아끼지 않았던 곳입니다. 상대산上臺山 정상의 누정 관어대觀魚臺는 괴시2리와 대진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해발 183m, 상대산 정상 서편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서 있습니다.

 

대진해수욕장 입구에 상대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습니다. 물론 괴시2리 마을에서도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길이 있습니다. 가파른 언덕길이 길손을 긴장케 합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뒤를 돌아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니 저기 바다에 한 척의 배가 흰 물결을 일으키며 항구로 돌아오고, 긴 방파제는 바다를 향해 굽어가고 있습니다. 한 모금 생수로 목을 축이고 새로운 기운을 얻어 힘을 다해 오릅니다. 고개를 숙여 이리저리 굽은 길을 오르길 십 여분, 드디어 상대산 정상부 팔작지붕의 정자 관어대가 길손을 반깁니다. 문득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가슴까지 상쾌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토록 시원한 눈맛을 보았습니까? 이처럼 상쾌한 기분이 얼마 만입니까? 사방이 트여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이런 것인가 봅니다. 동東으로는 일망무제一望無際 파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동해를 오롯이 펼쳐 보이며 가슴에 담아두었던 무거운 화두를 벗어던지라 합니다. 반대편 서西로는 영해면이 풍요를 상징하는 넓은 영해평야를 끼고 평화롭게 놓였는데 형제봉과 읍령泣嶺이 코앞에 붙어 있는 듯합니다. 더 위로 거인의 발걸음을 쿵쿵 내달리면 병곡평야로 이어지며 넓디넓은 평화로운 마음이 됩니다. 북北으로는 발아래 대진해수욕장, 덕천해수욕장, 영동해수욕장, 고래불해수욕장이 이어지고, 명사이십리明沙二十里 금빛 모래가 흰 비단처럼 햇살에 반짝이며 새롭게 가슴에 들어옵니다. 그 시선을 따르니 모래사장과 나란히 늘어선 소나무 숲이 마치 푸른 담요를 펼쳐놓은 듯합니다.

 

지나간 선현들이 이곳에 올라 들뜬 마음으로 풍광을 노래하며 시를 짓던 그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 정자에서 한량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관어대 정자는 팔작지붕으로 비록 최근에 새롭게 지어진 것이지만, 예전에는 퇴락한 누정이 지금처럼 바다를 향해 홀로 우뚝 솟아 점지의 묘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이 또한 자연과 하나 되는 ‘자연합일체自然合一體’ 사상을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동해안 최고의 명승 절경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습니다. 예부터 “영해의 관어대에 가보지 못하고 죽으면 저승에 가서도 한탄한다”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관어대가 절경이란 뜻입니다.

 

이곳에서 조망하는 사방의 풍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관어대觀魚臺’라는 이름은 목은 이색 선생이 지은 것으로 전해온답니다. 즉 이곳 관어대에서 내려다보면 바다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고래불이란 해수욕장 이름도 목은 이색 선생이 이곳에 올라서 보니 수십 마리의 고래가 뛰어놀고 있어 그리 불렀다 합니다.

 

상대산은 본래 조선시대 초기에는 성황당산城隍堂山으로 불렸습니다. 그 까닭은 ‘앞 못 보던 할머니 어대노구’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려 말에 영해부의 사록司錄으로 온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이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서 준동하던 팔령신八鈴神을 붙잡아 동해에 빠트려 죽였는데, 이때 이들을 제사 지내던 곳을 성황사城隍祠라 하여 이 산의 아래에 두었기 때문이랍니다.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는 일관되게 이 산의 지명을 관어대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