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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시리 ~ 대진리
 

괴시리 전통마을을 벗어나 명사이십리 대진해수욕장이 있는 대진리로 향합니다. 넓은 차도의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서 걸어야 합니다. 오가는 차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굽은 도로가 있어 행여나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랍니다.

 

길가에 펼쳐진 넓은 논밭이 보여주는 목가적 풍경이 길손을 행복하게 합니다. 오른쪽에는 산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고, 왼편엔 넓은 논밭이 물을 따라 펼쳐졌습니다. 그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괴시2리 마을이 곧장 나타납니다. 낮은 데로 흐르는 송천강 물길을 따라 삶을 이루는 사람들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 보입니다. 그곳에서 대진리를 향해 오른쪽 길로 걸어갑니다. 저기 왼편으로 상대산이 우뚝 솟아 기상을 떨치고 있습니다. 비록 블루로드의 정해진 길은 아닙니다만, 멋들어진 해안풍경이 압권인 상대산을 오를 수 있답니다. 상대산은 목은 이색 선생이 올라 시를 짓다가 멀리 바다에 고래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고래불이라 이름 붙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사방 막힌 곳 하나 없이 워낙 풍광이 멋들어져 운곡 원천석, 죽계 안노생, 점필제 김종직 등 수많은 명사와 시인 묵객들이 올라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해진 길은 파도처럼 이리저리 높고 낮게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갯길이 나옵니다. 고개를 올라서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바다가 지척에 와 있습니다. 크고 작은 배들이 줄지어 선 모습에서 한눈에 봐도 항구가 들어선 어촌마을이란 것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대진마을입니다. 문득 가슴이 설렙니다. 다름이 아니라 구한말 영양출신 의병장 벽산 김도현 선생이 망국의 한을 품고 스스로 바다로 걸어 들어갔던 곳이자, 바다로부터 석불이 떠밀려온 곳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해불신위

 

그물을 손질하는 분주한 어부들을 바라보며 길을 걷습니다. 그러자 오른편으로 검은 비석이 빛을 내며 바다를 향해 놓여있습니다. ‘해불신위海佛神位’, 즉 지난날 바다에서 떠밀려온 석불을 안치해 놓았던 곳이라는 뜻입니다. 불상의 명호를 비碑로 모시는 것은 특이한 경우일 것입니다.

 

불상을 기대했는데 그냥 검은 비석뿐입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바다로부터 무엇인가가 떠밀려 뭍으로 올라왔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동네 사람들이 몰려가서 보니 사람의 모습을 한 돌이었답니다. 사람들은 바다의 신이라 생각하며 다시 바다로 띄워 보냈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똑같은 장소에 다시 그 돌이 돌아와 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이를 마을의 경사라 여겨 마을 남쪽 입구에 잘 모셔놓고 바다에서 밀려온 것이니 ‘해불신海佛神’이라 하고는 수호신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어민들의 풍어와 뱃길의 안전을 빌며 치성을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에 의해 정성껏 모셔지던 이 불상이 해가 몇 번 바뀐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훔쳐간 것이랍니다. 믿음도 마음이 깨끗한 사람의 믿음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이기적 동기에서 자신만의 발복發福을 바란다면 부처님도 돌아앉을 것을 왜 모르는지, 홀로 독차지하려는 한심한 행위에 측은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있자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석불이 놓였던 자리에 ‘해불신위海佛神位’라고 새긴 작은 비석을 만들어 놓고는 위패를 만들어 제사를 올리고 있답니다. 분명한 것은 비록 도둑맞았을 지라도 그 불상은 마을 사람들 가슴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잔물결 일렁이는 바다가 마치 깊은 심연의 속내를 숨긴 채 침묵에 잠든 것처럼 보입니다. 바다를 향한 대진마을은 평온하기 그지없습니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과 육각의 정자, 그 옆으로 맞배지붕의 전각이 우뚝 솟았습니다. 그곳이 바로 벽산 김도현 선생이 절명시와 상복을 벗어놓고 바다로 들어간 장소랍니다.

벽산 선생을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을 진정시키며 ‘벽산도해단’을 향해 발길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