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정리 바다낚시터에서 차도 옆으로 난 길을 약 20분 남짓 걸어가면 대게원조마을 입구가 나타납니다. 간혹 항구로 느릿느릿 돌아오는 배들이 맑은 하늘과 어우러져 한가롭기 그지없어 보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걷다 보니 이미 경정2리 대게원조마을에 와있습니다. 80여 가구에 90여 명이 사는 무척 단출한 마을의 입구에는 8각 2층 누정이 바다를 바라보며 우뚝 솟아 있습니다. 대게원조마을을 증명이라도 하듯 누정 옆으로 단정한 비석이 서 있습니다. 고려 말 학자이자 정치가, 양촌 권근이 지은 《양촌집》에 의하면 930년 고려 태조 왕건이 안동 병산서원 지역에서 견훤과 일전을 겨룰 때, 안동지방 유지들과 영해부 토호세력 영해 박씨들의 큰 도움을 받아 승리로 이끌었답니다.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왕건이 영해와 영덕을 들러서 경주로 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 대게원조마을인 이곳 축산면 경정2리에서 영덕대게를 처음 먹어 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석에는 또 다른 옛이야기도 새겨져 있습니다. 비문 내용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고려 29대 충목왕(1345) 대에 정방필鄭邦弼이라는 사람이 초대 영해부사로 부임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사가 마을을 순시할 때 마을 입구 진입로가 매우 좁은 돌산의 협곡 지역이다 보니 수레를 타고 언덕을 넘어왔습니다. 이때 마을 주민들이 부임해 온 영해부사를 맞이하면서 이곳에서 잡은 영덕대게를 진상했는데 그 맛을 본 부사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지역 이름 역시 수레를 타고 재를 넘어왔다고 하여 수레 차車, 넘을 유踰자를 써서 ‘차유마을’이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곳 차유마을을 일컬어 대게원조마을이라 칭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잠시 풀어놓은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내려와 길을 걸어갑니다. 타박타박 걸어가노라니 한가로운 마을이 고요하기 짝이 없습니다. 민속체험가옥도 있다니 언젠가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리라 다짐합니다. 자연산 횟집과 민박집, 대게식당 등의 상가에는 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몇몇 사람의 그림자만 어른거립니다. 이곳에서는 대게는 당연지사이고 돌미역, 전복, 해삼, 멍게, 오징어가 특히 많이 난다고 합니다.
경정리 차유어촌체험마을
같은 마을이지만 보이지 않은 경계가 대게원조마을과 경정2리 어촌체험마을을 구분합니다. 이제 대게원조마을을 살짝 벗어나 어촌체험마을로 들어섭니다. 해안가에서 터전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나 봅니다. 바다 앞으로 놓인 넓은 공터 뒤로 경정어촌체험마을이란 푯말이 반기고, 기와집 대문짝에 대게 조형물이 떡 하니 붙었습니다. 그 앞으로 물고기잡이 체험을 위한 듯 야외풀장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마을 역시 민박과 자연산 횟집, 대게집, 상가 등이 일반 집들과 한데 어울려서 삶의 터전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의 명물로는 영덕대게의 원조마을답게 대게가 가장 유명하답니다. 그리고 자연산 미역과 성게, 말린 오징어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남태평양 바다처럼 물속에 노니는 물고기 떼가 훤히 보이는 맑고 투명한 앞바다에서 공동어장 바닷속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월에서 5월, 12월에는 직접 대게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일정 회비만으로 잡은 대게를 직접 쪄서 먹을 수도,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4월과 5월에는 미역채취 및 미역 말리기 체험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더불어 새해가 되면 해맞이 축제를 즐길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오징어잡이 체험, 풍등체험, 고동 따개비 체험, 통발체험 등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약 100여 미터를 더 걸어가면 마을 산길과 만나는 끝자락에서 오솔길을 걸어 축산면 블루로드 다리까지 이어진 해안초소 길이 시작됩니다. 이 길은 바다를 옆으로 두고, 작은 산길을 따라 평평하게 이어지는 참 편안하고 한적한 길입니다. 둘이서 나란히 걸을 수 없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걸어야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탐방객을 만나게 된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옆으로 살짝 비켜서면 됩니다.
블루로드 외 음식 및 숙박시설 문의는 삼가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