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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 장군의 호령이 깃든 골곡포
 

 박강 장군의 호령이 깃든 골곡포

 

골곡포는 수로부인의 이야기가 담긴 곳이기도 하지만 호국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곳 골곡포 주변에는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왜구들이 바다를 건너 침입해 와선 그동안 땀 흘려 지어놓은 농산물과 해산물을 약탈하는가 하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러 산과 바다를 분노케 하였답니다. 이미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이 들의 노략질은 사도성•전투에서 전멸당한 후 한동안 조용했으나 고려시대 말기 공민왕에 이어 우왕 대에 이르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우왕 12년(1386)이었습니다. 영해 출신 박강 장군은 우리나라를 침입한 홍건적을 크게 무찌른 후 잠시 숨을 돌리고자 고향 영해에 돌아와 있던 중이었습니다. 장군은 영해박씨 집안의 청년들과 노비들을 모아 한개大浦 모래사장에서 무술을 가르치는가 하면, 체력을 키우며 왜구들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해 5월, 남정리 남역의 역승驛丞으로부터 영해부사에게 긴급한 통문이 전달되었습니다. 왜구들이 이곳 골곡포를 침입해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급보였습니다. 영해부사는 장군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이때 박강 장군은 병사를 몰아 달려가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나라에서 파병된 육려 장군은 이번 전투에서의 승리가 죽음을 무릅쓰고 왜구를 물리친 박강 장군의 공이란 사실을 알고 즉시 상세히 기록해 조정에 알렸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박강 장군에게 중현대부中顯大夫 서운정書雲正이란 벼슬을 내리고 축산도병선도관령丑山島兵船都管領으로 임명했습니다.

이곳으로 유배와 박강 장군의 전기를 기록한 양촌 권근의 〈사재소감司宰少監 박강朴强 전傳〉에 의하면 박강 장군은 힘이 좋아 공민왕이 그를 무척 아꼈다고 합니다. 공민왕 10년(1361)에 홍건적紅巾賊이 경성京城을 함락하자 공민왕이 안동安東으로 파천하여 군대를 보내 수복할 때에, 박강 장군이 처음으로 군에 응모하여 총병관摠兵官 정세운鄭世雲장군 진영에 배속되었습니다. 접전이 시작될 무렵 홍건적이 성안에 목채木寨를 설치하여 항전하자 더 이상 공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장군이 판자로 된 대문짝을 떼어 가지고 나아가 사다리를 만

들어 올라가서 칼을 휘두르며 크게 고함을 치니 목책 위에 올라 있던 적들이 모두 질려서 땅에 떨어져 저희끼리 서로 짓밟았다고 합니다. 또한 박강 장군이 성문을 열고 들어가 적의 괴수 사류沙劉를 베자 이를 장하게 여긴 총병관이 특진시켜 마침내 산원散員에 제수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골곡포에 침입한 왜구를 무찌른 공으로 우왕 14년(1388) 10월에 축산도 병선도관령丑山島 兵船都管領이 되었는데, 이때에도 왜구의 배가 갑자기 들이닥쳐 우리 고려 수군의 배를 포위하고 영해성寧海城을 침범하려고 했습니다. 왜구의 수가 지키는 

군사보다 많아 인심이 흉흉했지만, 박강 장군이 또 한번의 화살로 적의 괴수를 맞히고 잇달아 4∼5명을 쏘아 맞히니 왜적은 포위를 풀고 달아나 다시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