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홈 > 블루로드 이야기 > 스토리텔링
경정리 바닷길
 

석리를 뒤로하고 바닷길로 들어섭니다. 역시 그곳 또한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솜씨이지만 자연과 닮은 길이 놓여있습니다. 석리에서 시작해 경정3리까지 대략 25분 걸리는 거리랍니다. 크고 작은 바위는 다북다북 자리 잡고 바다와 연결된 채 마치 한 장면의 복된 파노라마처럼 밝고도 은은한 풍경입니다.

 

한 굽이 돌아서자 어디선가 한숨 섞인 휘파람 소리가 들립니다. 귀가 번쩍 뜨이고 눈은 진원지를 향해 두리번거립니다. 파란 물결 사이에 검은 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는데, 바로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였습니다. 길손이 바라보는 눈앞에서 바닷속 바위에 붙어 자라는 돌미역을 채취하는 중입니다. 바다에 삶의 뿌리를 단단히 내린 해녀의 고독한 물질이라 생각됩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리듬을 타듯 파도에 몸을 맡기고 열심히 미역을 따고 있습니다. 해녀는 조금씩 더 넓은 바다로 향합니다. 그러다 바위 뒤로 몸을 감추니 갑자기 바다가 한가로워졌습니다. 침묵에 휩싸인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뗍니다.

 

용바위와 군인상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깎아지른 바위가 사람들의 발길로 인해 반질반질 매끈하게 다듬어졌습니다. 한 굽이 돌아서니 험상궂은 듯하면서도 한편으론 우스꽝스럽게 생긴 바위가 바다를 향해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서있습니다. 거북바위도 아니고 사자 머리를 닮은 바위도 아니지만, 자연의 기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평평한 옆면의 주름을 보았습니다. 비록 미동 없이 언제나 이렇게 있었던 바위지만, 이도 세월에 늙어가나 봅니다. 실은 이 바위가 용바위랍니다. 어느 날 용이 무엇에 쫓기듯 도망치다가 이곳으로 숨어들어 바위가 되었는데, 바다를 향해 기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물을 관장하며 하늘에서 풍운을 일으키던 용은  농경사회, 특히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뱃사람들에겐 믿음의 상징이 되곤 하였습니다.

 

한산해진 마음을 위로하듯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저기 죽도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바위와 둔덕에 가려 사라지기를 반복하던 파란 바다는 기꺼이 이방인의 시선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정성을 다합니다. 해안초소 하나를 더 지났습니다. 이번에는 제법 큰 초소처럼 보입니다. 아, 그 옆으로 우리 국군이 손을 번쩍 들어 반기고 있습니다. 바위에 잘 다듬은 나무 바닥에 초소와 함께 서 있는 우리네 국군이랍니다. 예쁘게 생긴 미소년 같지만 이래도 군에서 산전수전 겪은 병장 계급을 하고 있답니다. 병장과 하이파이브를 한 후 다시 앞을 보며 걸어갑니다. 

 

나무 널판 길이 편안합니다. 해안선을 따라 굽은 모습입니다만 이곳저곳 바위에 걸쳐진 블루로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참 투명합니다. 잔잔하게 이는 물결에 크고 작은 배들이 이리저리 서 있습니다. 

 

저 배들은 조금 있으면 바다의 풍요를 항구에 풀어 놓을 것입니다. 

모든 풍경이 하나하나 경이롭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바위와 바다, 잔물결이 절경을 선사합니다. 양감과 질감, 투명 색상과 불투명의 완벽한 조화가 도심에서 물든 경쟁의 시간을 정화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제 경정3리 마을이 가까워져 옵니다. 방파제를 대신한 울퉁불퉁한 바위 뒤로, 작은 어촌마을이 한가롭습니다. 

 

영덕읍에서 벗어나 석산 초소길을 걸어 축산면 경정3리 오매마을 입구에 다다릅니다. 소나무 우거진 암벽이 더 멋진 풍경을 만들어 작은 어촌마을에 품격을 더했습니다. 이곳에는 대게잡이 배들이 정박하는 조그마한 어항이 있습니다.

 

경정3리 오매향나무

 

자갈길을 걸어 경정3리 마을로 들어섭니다. 바다를 마주 보고 줄지어선 집들이 정겹습니다. 어느 날 풍수장이가 우연히 지나가다 남쪽에 오두산이 있고, 마을 앞에는 매화산이 있다고 해서 까마귀 ‘오烏’자와 매화나무 ‘매梅’자를 따서 오매라 칭했다고 합니다.

 

바다와 마을 앞길을 걸어가다 보면 높은 둔덕을 뒤덮은 향나무 무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그루가 아니라 한 그루라 합니다. 500년 전 안동권씨가 들어오면서 이곳 마을 앞 동신바위에 향나무와 소나무, 대나무를 심었는데,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대나무는 죽고 현재의 모습으로 남았습니다. 

 

이 향나무는 마을에 풍어와 풍년을 기리며 제를 올리는 동신당 뒤에 뿌리를 박고는 기암절벽을 온통 뒤덮고, 500년 속살을 오롯이 드러낸 채 그간의 세월을 묵묵히 전하고 있습니다. 나무 둥치 굵기는 비록 50cm 정도밖에 안 되지만 나무가 풍기는 위엄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그 위로 올라가 향나무 그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곤 했지만, 향나무가 사람들 발길에 몸살을 앓다보니 이를 걱정한 주민들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답니다. 이 향나무는 경상북도 지정(1982. 10. 29) 보호수로서 이곳 사람은 물론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답니다.

 

향나무 뿌리를 뒤로하고 마을 좁은 길을 돌아서니 다시 넓은 공터가 나옵니다. 이제 작은 조약돌이 알알이 박혀있는 모래사장을 통해 석산컨베이어를 지나 약 1.5km, 걸어서 25분 거리인 경정해수욕장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