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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리 가는 길
 

노물리에서 바다로 난 바윗길과 오솔길을 걸어 차도와 만나고, 그러다 다시 바다로 향한 길로 노물리 펜션단지 아래를 지나 석리 마을로 향합니다. 대략 55분이 소요되는 제법 먼 길이랍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경치만큼은 가장 빼어나다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길을 걷기 위해 마음을 비웁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도, 가슴에 담아두었던 생각도 모두 덜어내고 다시 길을 시작합니다. 대신 사색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마음을 차분히 합니다. 노물리 방파제에서 시작되는 길은 한 고개 올라서면 언제 무슨 일 있었느냐는 듯 새로운 풍경으로 변화합니다.

 

눈이 바다로 향하자 길가 잡풀들이 몸을 흔들며 다리를 툭툭 건드립니다. 해안가 바위들이 각각의 모습으로 바다와 다툽니다. 잔잔하기 이를 데 없는 바다는 마치 비단결 같습니다. 바위 위를 걷고, 다시 흙길을 걷다가 또다시 바위에 올라 앞만 바라보며 길을 걸어갑니다. 

 

꾸불꾸불 흰 밧줄로 엮은 길이 멀리까지 놓였습니다. 한 구비 돌아서면 또 어떤 풍경이 나타날까 사뭇 설레입니다. 저 멀리 석리 마을이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와 있습니다. 기교를 찾아볼 수 없는 길,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만들어진 길입니다.

 

앞만 보고 바삐 걸어가는 이라면 절대로 찾을 수 없을 청보랏빛 꽃이 반갑습 니다. 바닷바람에 맞서 저 혼자 자라난 붓꽃이랍니다. 하나 둘 셋 넷, 곱게도 피워낸 열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바람에 살랑 흔들리며 길손의 무던한 마음을 마구 흔들어 댑니다. 우아하면서도 독특한 이 꽃은 세상과 동떨어져 보입니다. 

 

붓꽃의 꽃말이 ‘믿는 자의 행복’이랍니다. 화려하지도, 모가 나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마치 깊은 지성의 속내를 감춘 여인의 자태 같습니다. 저 색상과 디자인으로 한복 한 벌 해입으면 참 아름답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창포붓꽃이라고도 하는 이 꽃은 일반 붓꽃과 달리 꽃잎이 홀쭉합니다. 거친 바다와 맞서 아름답게 피워내기 위한 자생적 능력일 것이라 단정합니다.

 

바윗길을 걷노라니 저 아래로 불쑥 검은 물체가 나타납니다. 이 길을 걷는 이들에게 마을 사람들의 친근감을 표현해 주려고 영덕군에서 조성해 놓은 해녀상입니다. 예로부터 석리와 노물리는 해녀들이 생계를 위해 물질을 하던 곳이랍니다. 당시 해녀들이 거친 파도를 이겨내고 물질을 끝낸 후 해안으로 올라오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얼마를 더 걷다가 다시 포장길로 올라섭니다. 바다로 난 길이 있지만 블루로드 지도에는 포장길로 안내해 두었습니다. 바다와 가까운 터라 간혹 거친 파도가 밀려오기라도 하면 위험하기 때문이랍니다. 아무리 경치가 일품이이라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를 걸어 다시 바다로 난 길로 내려갑니다. 고개를 드니 파란하늘이 무척 맑습니다. 도심에서 시달린 눈을 정화해주는 느낌입니다. ‘블루로드’, 즉 파란 길이란 뜻이 어쩜 이리도 잘 어울릴까 생각합니다. 소나무 그늘 사이사이로 햇빛이 뚫고 들어와선 그늘에 빛이 있다는 사실을 심심한 길손에게 깨닫게 해줍니다. 저 멀리 축산면이 보이면서 죽도산이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저절로 다리에 힘이 들어갑니다. 쪽빛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바다와 맑디맑은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가슴까지 파란 물이 들었습니다.

 

석리로 향하는 길에 반가운 야생화를 새로이 만났습니다. 이름하여 갯완두꽃입니다. 바다를 향해 분홍과 청보라 꽃이 무리 지어 피었습니다.

다시 포장길로 올라섭니다. 간간이 지나는 차들이 한가합니다. 바쁠 것 없는 세상, 아름다운 바다 경치에 넋을 놓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다를 바라다봅니다. 발아래로 바다를 향해 기어나간 듯 ‘S’자 모양을 한 방파제가 바다색과 곰솔 가지를 만나 하나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 작은 어촌마을에는 지대를 따라 바다를 향해 집들이 들어섰습니다. 한가로운 배들과 방금 바다에서 채취한 돌미역이 오후 붉은 햇살에 말라갑니다. 

 

마을로 내려갑니다. 이곳에 블루로드 도장 받는 곳이 있답니다. 장난삼아 손바닥에 한 번 찍어 봅니다. 선명한 스탬프를 보니 어린 시절의 ‘참 잘했어요’란 둥근 고무도장이 떠오릅니다. 

석동마을 주민들이 둘러앉아 돌미역을 다듬고 건조대에 올려 햇살 좋은 곳에 옮겨다 놓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씩씩하게 인사를 건네며 앞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초로의 남자와 아주머니,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일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자연산 돌미역 한 축에 얼마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동시에 고개를 들어주십니다. 그중 한 분이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시장에서는 2만 원에서 2만5천 원 받는데 여기서는 1만5천 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역시 생산 현지에서 구매하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축을 사서 동행인 사진작가 등짐에 나누어 넣었습니다.

 

작별인사를 고하고 다시 바다로 향해 난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블루로드 도 장 받는 곳 부스 앞에 커다란 바위와 테트라포드로 얼기설기 막은 방파제가 바닷물을 가둬 작은 수영장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마치 자연이 만든 수영장처럼 말입니다. 어촌 체험객을 위한 해수 풀장이라 생각하 면 금방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