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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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바닷가
 

해맞이공원에서 아래로 난 계단을 내려오니 바다가 점점 가까워집니다. 

천천한 걸음으로 대략 25분쯤 걸리는 길인데, 작은 해변 마을 대탄리를 향합니다. 몇 걸음 옮기다 보면 문득 팔각의 정자가 바다를 향해 서 있습니다. 길을 따라 더 아래 바다 가까이로 향합니다. 한 쌍의 부부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며 정겹게 올라옵니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방인에게 길을 묻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호들갑을 떨며 답해 줍니다. 이 길은 블루로드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일 겁니다. 그만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부담이 없단 뜻이기도 합니다. 바다 옆으로 난 길을 걸어갑니다. 

 

앞을 바라보며 걷노라니 바다를 품은 큰 바위와 소나무 숲이 하나의 띠처럼 어울려 새로운 풍경을 선사합니다.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한 구비 돌아서면 바다가 새로운 세상을 펼쳐 눈을 밝혀줍니다. 층층의 바위가 색상을 달리합니다. 

사람들에 의해 반질반질 닳은 바윗길이 길을 안내합니다. 

 

고개를 드니 먼데 수평선이 물안개와 겹쳐 불투명한 수채화를 그려놓았습니다. 낮은 파도가 간간이 작은 포말을 일으키며 고요를 깨웁니다. 바람이 불어와 곰솔가지를 흔들고, 전국 산악회가 솔가지에 걸어놓은 색색의 리본들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 걸린 형형색색의 산악회 리본에 나름대로 ‘흔적’이라 이름을 붙여 봅니다. 이 예술작품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의 발길에 더 많은 리본이 흩날

릴 것입니다. 문득 개인 리본이라도 만들어 올걸 그랬다는 욕심에 피식 웃음이 납니다. 그런데 그 많은 리본 가운데 ‘블루로드’란 리본이 선명하게 들어옵니다.

 

파란 바다는 여전히 따라오고, 바위틈에서 낯선 고양이 한 마리가 이방인에 놀라 후다닥 달아납니다. 오달진 표정과 달리 뒷모습이 쓸쓸합니다. 그놈 놀란 눈빛이 오래도록 가슴에 잔상처럼 따라옵니다. 문득 무얼 먹고 살아갈까 때 아닌 걱정이 앞섭니다. 오만한 인간의 값싼 동정이 불편하다 여겨집니다. 

넓은 바다는 빛과 날씨에 따라 다른 색상을 보이곤 합니다. 바다 앞에 서면 사람도 어느새 바다가 되곤 합니다. 가까이는 깊은 심연처럼 속을 숨긴 듯하지만, 점점 짙어지는 청자 빛에 발걸음에선 사색이 묻어나고, 멀리는 해묵은 백자의 빛깔에 문득 고향이 떠오르며 우수憂愁를 느낍니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이 무심한데,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한 척의 배가 햇살을 받으며 드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먼 데로 나아갑니다. 작지만 만선의 꿈이 가득 실려 있는 듯합니다. 볼을 스치는 바람에 습기가 묻어 있습니다. 

 

그늘에 앉아 춥다 합니다. 간사한 몸이 햇살을 그리워합니다. 그늘에서 일어나 햇살을 향해 드니 가장자리 숲길에 짙은 보랏빛 갯완두꽃이 앙증맞게 피었습니다. 해안가 모래 사구에서 바닷바람과 힘자랑하며 살아가는 꽃이랍니다. 꽃말이 ‘영원한 즐거움’, ‘미래의 기쁨’이라니 넓고 깊은 바다의 풍요를 찬양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앞으로 만날 또 다른 갯완두꽃이 궁금합니다. 어떤 색과 어떤 모습으로 어떤 곳에서 반길지 말입니다. 

이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뒤를 급하게 따라 옵니다. 선두 경쟁이라도 하듯 다투어 걷는 모습을 보며 길섶으로 물러섭니다. 그래도 그들이 건네는 인사에선 정이 뚝뚝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