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홈 > 블루로드 이야기 > 스토리텔링
영덕읍의 진산 고불봉을 향해
 

금진구름다리를 지나 영덕 사람들의 주산 고불봉으로 향합니다. 산길 4km, 대략 한 시간 반 정도 걷는 길입니다. 앞에서 걸었던 산책로에 비하면 이제 제대로 된 등산이 시작되려는 참입니다. 호흡을 조절하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반복되면서 해발 235m 고불봉으로 이어집니다. 멀리 쪽빛 바다가 바람을 실어와 눈까지 맑게 해줍니다.

 

시작 길은 이방인을 다독이기라도 하는 듯 내리막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내려 걷는 일 뒤에는 반드시 가파른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지막한 수풀 사이로 소나무가 도열해 그늘을 만들고 있습니다. 드디어 첫 오르막을 만났습니다. 누군가가 가로로 놓아 둔 통나무 다리에 힘을 덜어줍니다. 어느덧 이마의 땀방울이 조금씩 굵어집니다. 곳곳에 놓여진 친절한 안내판과 리본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며 쉼터에서 잠시 땀을 씻어냅니다. 물 한 모금으로 청량한 기운을 불어넣고 문득 걸어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저 길을 걸어온 자신이 자못 대견스럽습니다.

 

한 고개 넘자 그곳엔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습니다. 길을 재촉하다보면 이름 모를 산새소리가 귀를 깨우고 바람은 이마의 땀을 씻어줍니다.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 끝은 무척 부드럽습니다. 문득 고개를 드니 흰구름이 파란 하늘에 뭉싯뭉싯 걸렸습니다. 그러다가 평지를 만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습니다. 

마치 아무 걱정거리 없는 일상처럼 아실랑아실랑 아주머니 걸음걸이를 닮게 됩니다. 

한 굽이 돌아서니 산이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내어줍니다. 팍팍한 삶에 촉촉한 생명력을 주는 외줄기 길입니다. 여기선 잠시 도심에 길들여진 영혼을 빼앗겨도 좋을 것입니다. 

 

드디어 동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전날 내렸던 비로 기온이 올라간 바람에 희뿌연 안개가 먼데 바다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평상이 놓여 길손에게 쉼터를 선사합니다. 배낭에 넣어온 간식을 꺼내 허한 배를 달랩니다. 

다시 고불봉을 향해 힘을 냅니다. 얼마를 걸었을까? 저 멀리 산등성이가 파도를 치는 그 곳에 우뚝 솟은 바람개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헤아리기엔 너무 많습니다. 하늘과 맞닿은 풍경, 이국적인 모습에 붙들려 걸어가노라니 바람개비가 조금씩 다가와 마음에 바람을 불어줍니다. 다급한 발걸음도 한참을 멈추게 하는 매력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고불봉이 저 너머에 나타났습니다. 참으로 잘 정돈된 길에 오르막 내리막 번갈아가며 앞을 터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힘을 내 정상을 올랐습니다. 저 뒤 속세를 따라온 산이 더 깊고 푸르게 느껴집니다. 수를 놓듯 발아래 펼쳐진 풍경들이 환하게 다가오고, 영덕읍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입니다.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바다에서 고개를 돌리면 저기 7번국도 위로 차들이 달려갑니다. 오십천 강줄기, 먼데 안산 案山이 영덕읍을 침식분지•로 만들어 포근하게 품었습니다. 성냥갑보다 작은 집들, 우뚝 솟은 건물들이 하나의 띠처럼 어울립니다. 땀을 훔치며, 집에서 얼려 배낭 속에 꼭꼭 감춰둔 시원한 캔 하나를 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