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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랑을 맺어주는 대게누리공원과 ‘헌화가’ 탄생지 골곡포
 

2012년 4월에 문을 연 대게누리공원은 포항과의 경계선, 즉 남쪽에서 시작하는 블루로드의 출발지입니다. 영덕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볼거리 제공을 위해 조성된 대게누리공원이 사람들의 기념촬영 장소로 소문이 나면서 발길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포항시 북구 송라면과 접한 남정면 7번 국도변에 있는 공원에는 폭 36m, 높이 15m로 국내 대게 조형물 가운데 가장 큰 대형 대게 트릭아트와 블루로드 포토존 등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특히 캄캄한 밤에는 대게의 눈이 노랑, 파랑, 빨강 세 가지 색으로 표현돼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그래서 이곳을 무심히 지나치던 차들도 대게 형상을 보며 영덕에 왔음을 실감한답니다. 앞에 세워진 ‘♡’ 사이로 대게의 모습을 배경 삼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찰칵!” 하시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답니다.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곳에는 아주 특별한 곳이 있습니다. 고개를 왼쪽 논으로 돌리면 거북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옆으로 기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오랜 옛날부터 그곳에 그렇게 있으면서 특별하게 여겨졌습니다. 이 거북바위가 특별한 것은 생김 때문만은 아닙니다.

옛날 이곳은 골곡포라 해서 깊고 넓은 계곡이었습니다. 숲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항시 흐르는 곳으로 신라의 서울 경주에서 형산강을 따라오다가 동해바다를 만나면서 영덕, 영해, 울진, 강릉으로 가는 북해통이란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송라역驛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역참이 있던 이곳의 골곡포 거북바위는 보부상들이나 부임지로 향하던 고을 원님이 도중에 피곤한 몸을 잠시 쉬며 주위 풍광에 마음마저 풀어놓던 곳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일연스님이 집필한 ‘삼국유사’의 신라 향가 ‘헌화가’의 수로부인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향가鄕歌 중에서 장소가 알려진 곳으로는 유일하다고 합니다. 거북바위 뒤로 돌아가면 바위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 산과 함께 이야기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신라 향가 수로부인의 전설 ‘헌화가’

 

때는 신라 성덕왕 시절이었습니다. 순정공純貞公은 강릉태수에 임명되어 그의 아내인 수로부인水路婦人과 하인들을 거느리고 임지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경주 출신인 수로부인은 아름다운 미모와 빼어난 자태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수로부인도 바다를 구경해본 적이 없는 터라 내심 기쁨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바다와 마주한 수로부인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넓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넓은 줄은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 경주에서 출발한 일행은 형산강을 따라 경주 안강, 포항 흥해를 지나 송라까지 오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곳 송라역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당도해보니 동대산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골곡포를 이루는데, 넓은 계곡 사이에 5리나 되는 암벽이 병풍을 둘러쳐 절경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마침 화사한 봄날이라 산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분홍빛 필터를 끼워놓은 듯하였습니다. 

그때 이곳 사또와 사람들이 일행이 지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중에는 수로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달려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송라역 책임자와 이곳 주민들은 솥을 걸어놓고 진기한 갖가지 해산물로 정성껏 음식

을 만들어 순정공과 수로부인에게 대접했습니다. 그 맛을 본 수로부인은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모두의 눈과 귀와 입이 호사를 누리며 잠시 마음을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지금 시간으로 치면 오전 11시를 살짝 넘긴 때였습니다. 맑은 햇살이 더욱 화사하게 비추는데 마침 고개를 들어 뒷산을 올려다보던 수로부인의 눈이 커지더니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벼랑 바위에 붉게 핀 철쭉꽃을 본 것입니다. 아름다운 미모만큼 감성 또한 남달랐던 부인이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저 바위에 핀 꽃은 무슨 꽃인지 참 곱기도 하구나. 누가 꺾어다 주면 좋으련만. 누가 없을까?”

사람들은 수로부인이 말한 벼랑 위 꽃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과연 그곳에는 철쭉꽃이 수로부인처럼 농염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화사하게 피어있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촌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습니다.

“마님, 저곳은 높고 매우 험한 곳이라 감히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 말에 주위 사람들도 입을 모아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쳤습니다. 수로부인의 크고 아름다운 눈이 금세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뒤에서 암소를 돌보고 있던 마을 사람이 부인에게 다가와 이상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紫布岩乎邊希자포암호변희 - 짙붉은 바위 위에

執音乎手母牛放敎遣집음호수모우방교견 -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니

吾肹不喩慚肹伊賜等오힐불유참힐이사등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화힐절질가헌호리음여 -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이것이 바로 《삼국유사》에 실린 〈헌화가獻花歌〉입니다. 이 노래를 부른 마을사람은 부인을 여의고 홀로 물질을 하며 살아가던 50대의 남자였습니다. 그 뜻을 알아챈 수로부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남자가 얼굴이 붉어진 수로부인을 뒤로하고 거북바위 뒤로 돌아가는데 이때 멀리서 송아지와 함께 풀을 뜯던 암소가 달려왔습니다. 주인이 자신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는 줄 알았던 것이지요. 그 모습을 본 남자는 발길을 멈춰 암소를 달래고 어루만져 안심을 시킨 후에야 다시 거북바위 뒤를 돌아 바위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찔한 마음으

로 남자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신이라도 들린 듯 한 묶음의 꽃을 꺾어 내려와 수로부인께 바쳤습니다. 그러자 꽃을 받아든 수로부인의 아름다운 용모가 더욱 화사하게 빛이 났습니다. 매우 흡족해하던 수로부인은 그 남자의 용기와 수고에 고마움을 표하며 며칠을 동행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제의를 했습니다. 바다에 대한 것들과 이곳 사람들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자는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어쨌든 천하절색 수로부인과 며칠을 여행한다는 꿈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 목소리조차도 마치 마음속에 한 송이 꽃을 떨어트리는 듯 들렸습니다. 모여든 사람들은 부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남자는 일행과 함께 길을 가면서 바다에서 일어난 일들과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로 수로부인을 흡족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골곡포에서 떠난 지 이틀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병곡의 대진마을을 지나던 중 갑자기 먹구름과 함께 바다에서 파도가 일더니 해룡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닷속으로 데려가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남자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수로부인을 구할 묘책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즉석에서 ‘해가海歌’를 지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노랫소리가 용궁에까지 들리도록 힘차게 불렀습니다. 노랫말은 이렇습니다. 

 

龜乎龜乎出水路구호구호출수로 -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어 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약인부녀죄하극 - 남의 아녀자를 약탈한 죄가 어찌 크지 않으리오

汝若悖逆不出獻여악패역불출헌 - 네가 만약 거절하고 내어 놓지 않는다면

入網捕掠燔之喫입망포락번지끽 - 거물을 놓아 기필코 잡아다 불에 구워먹으리

 

이 노랫소리를 들은 용은 후환이 두려운 나머지 부인을 무사히 돌려보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남자는 불안한 나머지 강릉까지 수로부인을 따라갔다고 합니다. 수로부인의 용모가 워낙 뛰어나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물에 약탈당했는데 그때마다 남자가 지혜와 용기를 발휘해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강릉까지 따라갔던 남자는 다시 영덕 송라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수로부인이 준 감사의 선물로 정숙한 부인을 얻어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합니다.

이렇게 남자가 부른 ‘헌화가’와 ‘해가’는 윤사월 철쭉꽃이 필 때마다 부경리 총각들에게 불렸답니다. 이후 고려 중엽까지 불리다가 남정면 정수사 승려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정수사에서 수도하던 승려 한 분이 군위 인각사에서 일연一然선사가 《삼국유사》를 집필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노래를 알려주어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향가 중에서 지어진 장소가 알려진 곳으로는 〈헌화가〉가 유일한 노래입니다. 

이곳 대게누리공원을 오신다면 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 선현들이 살아오면서 불렀던 노랫말과 전설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거북바위가 빙긋이 미소를 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로부인을 살리기 위해 불렀던 ‘해가’라는 노래는 그 주제가 《삼국유사》 기이편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들어 있는 〈구지가龜旨歌〉와 내용이 비슷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