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으로는 동해에 임하고 서는 약 18000여평의 장사평야를 이룬 가운데 양성리가 있다. 남은 약 200여m 정도 되는 남산이 솟아 있는 부경리가 있고 서북은 오산이 있으며 부흥리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긴불, 두천(斗川), 오산(烏山), 장태, 점집, 내동 등이 있다. 내동은 1470년경에 안씨(安氏)가 안쪽에 마을을 개척하여 살았다 해서 내동(內洞)이라 칭하였다. 두천은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장사 서쪽 높은 곳을 개척하여 두천(斗川)이라 이름을 짓고 정착한 것에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장사리는 긴불 즉, 긴 백사장이 마을 앞에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긴불, 진불 또는 장사라 하였다.
◦ 1950년 9월 15일 05:00시를 기하여 시작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하여 사전에 적의 경계를 약화시키고 인천지역으로 적의 이동을 저지시키고자 하는 소위 《양동작전》의 하나로 실행된 것이 남정면 장사리 장사해수욕장에서 치러졌던 장사상륙작전이다.
◦ 상륙작전을 담당한 부대는 1950년 8월 24일 대구에서 긴급 모집된 총 772명의 대원을 주축으로 8월 27일 밀양에서 이명흠 소장을 대장으로 하여 창설된 육군본부직할 독립 제1유격대였다. 이들은 8월 31일까지 밀양에서 주둔하며 기초적인 교육을 받은 후 다시 부산의 육군본부 청사로 옮겨 9월 11일까지 기본적인 유격교육을 받으며 유격부대로서의 부대편성을 완료하였는데, 부대는 편의상 정규사단 형태로 편제를 하고 유격부대의 특성상 군번과 계급을 부여하지 않고 임시계급을 부여하여 상륙작전에 대비하였다. 이렇게 편성된 유격대는 1개 연대병력의 약 180명으로 구성하고 지휘관은 임시계급으로 대령 혹은 중령으로 보임하여 사단의 체제를 갖추었으며, 일반 사병들도 임의대로 계급을 부착하도록 하였다.
◦ 1950년 9월 10일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74호에 의하여 부대편성과 출동준비를 완료한 제1유격대는 남정면 장사리 해안으로 상륙하여 김무정이 이끄는 북한군 제2군단의 후방지역을 교란시켜 적이 인천상륙작전을 알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적이 알더라도 인천지역으로의 적부대의 이동을 지연시키는 임무를 띠고 9월 13일 오전에 육군본부 연병장에서 출정식을 거행한 후 14:00시에 부산항에서 2,700톤급인 LST 문산호를 타고 상륙지인 장사리 앞바다로 향하였다.
◦ 9월 14일 04:30분경 장사리 해안에 도착한 제1유격대는 적의 경계가 소홀한 일출 전에 상륙작전을 완료하기로 하고 문산호를 해안의 백사장으로 접안시켰다. 그러나 해안지형에 대한 사전정보의 부족과 태풍 〈케지아〉의 영향으로 거의 4~5m에 이르는 높은 파도로 문산호는 해안에 접안하지 못하고 수중의 모래턱에 좌초되어 정상적인 상륙작전은 실행하지도 못한 채 대원들은 좌초된 문산호에 갇혀 적의 집중사격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 당시 장사리 주변의 적정은 적 제5사단이 포항 형산강을 중심으로 아군 제3사단과 대치하고 있었으며, 적 5사단의 후방지역은 적의 제101 치안연대가 배치되어 해안경비과 점령지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항 형산강 일대의 치열한 공방으로 적의 정예부대의 대부분은 여기에 투입되고 후방지역인 영덕지역 및 장사리에는 소수의 경비병력만이 주둔하고 있었다.
◦ 그렇지만 적들이 상륙작전을 염두에 두고 해안 모래사장을 따라 구축해 놓은 토치카와 소위 남산이라고 불리는 200고지와 부흥리 뒤편의 야산과 봉황산이라고 불리는 271고지에 설치된 박격포와 직사포는 상륙부대의 최대 위협이 되었다.
◦ 비록 상륙함이 좌초되었더라도 작전명령에 의하여 상륙작전을 감행하기로 하고 우선 특공대를 뽑아 상륙함과 해안의 소나무와 긴 밧줄을 연결시켜 이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특공대에 의하여 밧줄이 연결되자 먼저 작전명령에 따라 제28연대가 먼저 상륙을 감행하여 연대장 이영훈 이하 다수의 사상자를 낸 뒤에 해안지역을 완전히 평정하여 제29, 37, 32 연대가 순조로이 상륙할 수 있도록 엄호하였다.
◦ 해안지역에서 아군의 상륙작전을 저지하던 적들을 맹렬한 공격으로 200고지 및 220고지로 패주시키고 해안선에서 교두보를 완전히 구축한 유격대는 작전명령대로 예비대인 37연대를 제외한 3개 연대가 3개 방면에서 포위망을 좁히며 200고지를 공격하였다. 적들도 완강히 저항하였으나 패색이 짙은 적들은 마침내 서남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하여 9월 14일 14:50분경 아군 32연대에 의하여 200고지는 완전히 점령되었다.
◦ 이로써 해안 교두보와 200고지를 확보하여 지휘부를 설치한 유격대 사령부는 장사리 일대에 산개하여 있는 적의 포진지와 잔여부대를 공격하기 위하여 4개 연대에서 각 2개 대대를 선발하여 이들을 공격하여 완전히 소탕시킨 후, 이어서 제29연대로 하여금 장사리 북쪽의 중요한 고지인 271고지인 구계리 뒤편의 봉황산을 공격, 점령하도록 하여 영덕으로부터 지원되는 적의 주요 보급로를 차단하도록 하였다.
◦ 따라서 9월 14일 새벽을 기하여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이날 종일 전투를 벌여 적을 완전히 패주시키며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아군은 많은 전과(戰果)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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