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로드속 마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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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시리

괴시리 전경

본래 영해부 읍내면 소속으로 호지마 또는 호지촌이라 하다가, 고려 말엽의 선비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중국 사신으로 다녀와서, 자기 고향인 이곳의 지형이 중국의 괴시(槐市)라는 마을과 흡사하다 하여 괴시라 하였다하는데, 1914년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어대동, 교동, 운당, 북천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괴시동이라 하고 영해면에 편입시켰으며, 1945년 광복 직전에 호지말을 괴시 1동이라 하였고 1945년에는 관어대와 송천리의 일부를 통합하여 괴시 2동으로 하였다. 또한 노동, 즉 교동을 괴시 3동이라 분동하였으며, 1988년에 동을 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말 삼은 목은 이색 출생지

고려말 삼은 목은 이색 출생지

◦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槐市里)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함께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태어난 곳이다.

◦ 목은의 아버지 이곡(李穀) 또한 고려시대의 대학자로서 목은이 6살 때(1333년) 원나라 정동성 향시에 수석으로 급제했고, 원나라 황제에게 고려에서의 처녀 징발을 중지하게 했던 문장에 뛰어난 경학(經學)의 대가였는데 충남 한산(지금의 충남 서천)에서 산천경을 찾다가 영덕군 영해에까지 이르러 머물다가 영해향교 대현 김택의 사위가 되어 영해면 괴시리(당시 호지마을)에 정착하였고, 이곳에서 아들 목은 이색이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게 되었으며, 괴시라는 마을이름도 목은이 문장으로 원나라에서 이름을 떨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던 중 중국의 괴시마을과 자신이 태어난 호지마을이 넓고 아름다운 풍경이 비슷하다고 고쳐지은 이름이다.

◦ 목은은 14살(1341년)에 진사가 되고, 26살에 향시와 정동행성의 향시에 1등으로 합격해 서장관(書狀官)이 되었고, 27살에 원나라 제과(制科)의 회시에 1등, 전시에 2등으로 합격해 원나라 국사원편수관을 지내는 등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총명하였으며, 30살에 우의간대부가 되어 삼년상을 제도화하였고, 34살에는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남행할 때 1등공신이 되었으며, 40살에는 대사성이 되어 성균관의 학칙을 새로 제정하고 김구용, 정몽주, 이숭인 등을 학관으로 채용해 성리학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했으며, 48살에는 왕명을 받고 그 해 2월에 입적한 나옹왕사를 위해 여주 신륵사와 양주 회엄사에 세울 사리탑의 비문을 세웠으며, 50살에는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의 호를 받고 우왕의 사부(師傅)가 되었고, 64살에는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 68살에는 한산백(韓山伯)에 봉해졌다.

◦ 그의 문하에는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으며, 다섯 번이나 공거(貢擧)를 관장하여 한 시대의 명사들이 모두 목은의 문하에서 나왔고, 「목은문고」, 「목은시고」와 같은 저서를 남긴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 선생의 문집에는 출생지 영해를 읊은 시가 20여 수가 남아있으며, 현재 영덕군에서는 격년제로 「전국목은문화제」를 실시해 선생을 기리고 있고,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 단산서원에서 매년 제향을 올리고 있다.

효자 주세붕 망일봉 詩 배경지

효자 주세붕 ‘망일봉’ 詩 배경지

◦ 조선시대 지방 사립교육기관 서원의 시초인 백운동서원을 세운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대학자인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했다.

◦ 영해면 괴시리와 사진리 경계에 우뚝 솟아 있는 산 망일봉(望日峰)은 예부터 많은 선비들이 동해의 해 뜨는 광경을 보기 위해 즐겨 찾던 곳으로 이곳에도 효자 주세붕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 조선시대 중기 주세붕의 아버지가 옥에 갇힌 몸이 되었을 때 어린 주세붕은 마침 이 지방에 순시 차 온 관찰사를 찾아가 아버지를 방면(放免)해 줄 것을 호소했으나 풀어주지 않았다.

◦ 다음날 관찰사가 동해의 해 뜨는 광경을 보기 위해 영덕군 영해면에 있는 망일봉에 올랐고, 어린 주세붕은 망일봉까지 따라와서 아버지를 풀어줄 것을 호소하였다.

◦ 관찰사는 어린 주세붕의 효성에 느낀 바 있어 운자(韻字)를 불러 시를 짓도록 하였고, 어린 주세붕은 그 자리에서 시를 지었으며, 소년의 시구(詩句)에서 나타나는 높은 기개에 감탄한 관찰사는 어린 주세붕을 여러 번 칭찬하고 그의 부친을 즉시 풀어 주었다.

故國蕭蕭落葉紛 危峰一上看朝暾
日華金動連天表 潮響兵轟割地根
相公胸寬呑海嶽 書生眼大小乾坤
若使兩腋生風 汗漫飛騰萬丈雲
쓸쓸한 고향, 낙엽은 뒹굴겠지만 높고 험한 봉우리 위에서 아침 해돋이 바라보네.
금(金)빛 같은 햇빛은 하늘을 이었고 파도 소리 우렁참은 땅을 가르는 것 같네.
상공(相公)의 넓은 마음 해악(海嶽) 삼킬 듯 너그러운데 서생(書生)의 큰 눈엔 천지(天地)가 작아 보이네
만약 양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이는 날개 있다면 넓게 퍼져 있는 높은 구름 위를 날아 보련만

큰골

건네마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