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영덕현 동면 지역으로 석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69년에 나온 「경상도속찬지리지」에 보이는데, 여기에는 석면포(石面浦)로 나온다. 한편 1789년에 발간된 호구총수에 의하면 석리는 돌면과 예진육·해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14년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예진리와 돌면리를 병합하여 돌이 많은 곳이라 하여 석동이라 하고 오보면에 편입시켰다가 1934년 4월 1일 행정구역 변경 때에 다시 영덕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의 중심부인 산등성이를 따라 바다 쪽은 예진(芮津)으로 불리고 내륙계곡쪽은 돌면(乭面)이라 부른다.
석리와 노물 사이에 바닷물에 마모된 화강석이 축구공같이 둥글어 조경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으며, 이 돌들의 형상이 공기돌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깨목은 짜개라 하며, 공기돌의 방언이다.
블루로드 외 음식 및 숙박시설 문의는 삼가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