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영해부 남면 지역으로 긴 모래불이 있으므로 뱃불 또는 경정(景汀)이라 하였는데 경정이란 지명은 1425년에 발간된 「경상도지리지」에 경정포(景汀浦)라는 지명이 보이며, 1789년에 발간된 「호구총수」에는 차유진경정육리와 경정진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지경(地境)인 오매동과 차유동의 일부와 경정동을 병합하여 경정동이라 하여 축산면에 편입하였으며, 1945년도에 경정을 경정 1동, 차유를 경정 2동, 지경·오매를 경정 3동으로 분동하였으며, 1988년에 동을 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안동의 병산전투(서기 929년)는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개국한 고려 태조 왕건의 명운을 건 절대절명의 전투였다. 두 달에 걸친 이 전투를 통하여 왕건은 명실상부한 후삼국 통일의 선도자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 전투에서 지금의 경상북도 북부 지역민들이 합심하여 왕건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특히 영덕 사람들은 왕건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전투가 끝난 1년 뒤인 서기 931년에 경주로 가는 길에 영해와 영덕을 거쳐 가면서 영해와 영덕 지역민들을 크게 위로하였다.
◦ 이 때 영해 지역을 순시해 근처 축산면 경정2리 대게원조마을에 다다른 태조 왕건에게 지역민들이 특별한 음식으로 대게를 진상하였으며, 대게를 먹어본 왕건이 영덕대게의 뛰어난 맛을 칭찬하여 이 때부터 영덕대게가 명성을 떨치게 된다.
◦ 또한 영해를 순시한 태조 왕건은 이 지역 주민들이 예의 바르고 서로 사양하는 미풍이 있다하여 고을 이름을 예주(禮州)라 명명해 이 때부터 영해가 예주라 불리었으며, 이때 태조 왕건이 영해를 지나 자부터재를 지나 영덕, 강구 삼사를 거쳐갔다는 사실은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영해도호부〉조에 기록되어 있다.
경정리, 뱃불 마을에 있는 모래톱을 말한다. 뱃불의 뱃은 소금을 만드는 벗에서 온 것으로 보여진다. 즉 소금을 만드는 벗불이 바뀌어 뱃불 혹은 백불이 된 것으로 보이며, 이 벗이 빛으로 되어 한자식 지명인 빛 경(景)자로 써서 경정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일설에는 1960년대 이전에 경정 1리 마을 앞에 맑고 고운모래사장이 넓게 형성되어 있어 흰 백(白)자를 붙여 백불이라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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