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영덕현 중남면 지역으로 거무리, 거무 또는 검호, 거동, 금동이라 하였다고 하는데이는 오십천 옆의 큰 물가가 되므로 큰물가가 변하여 거무리, 거무로 불리다가 한자식 지명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대게 거는 크다는 뜻이며, 무는 물이 많은 논을 무논이라 하듯 물을 나타내는 말이란 사실로 보아 이렇게 추정하여 볼 수 있다 하겠다. 오늘날 금호리로 추정되는 것으로 보이는 금리(今里)라는 지명은 1890년 후반에 나온「경상북도영덕군읍지」에 처음 보이나 이보다 앞서 나온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 1935년에 나온 「영영승람」에는 상검(上劍)이라는 지명이 나온다. 현재의 지명은 1914년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금동, 하금동과 둔전, 소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호동이라 하고 영덕면에 편입되었다가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큰골과 도장골 사이에 바위가 우뚝 서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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