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은 그곳에 사는, 또는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내가 지금 걷고있는 이 길이 지명이 어떠하며 위치가 어떠하며 풍광이 어떠한 지를 떠나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그것 자체 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때가 있다.
걷는 것은 자연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영덕에서 블루로드를 오르는 것은 가장 영덕을 알고, 이해하고, 느끼고,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자, 내 마음에 영덕을 가장 깊이 심을 수 있는 길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잠시 내 품에서 쉬었다 가도 좋지 않겠냐며 속삭여 준다. 걷기 시작점은 강구터미널이다. 도로변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가 안내자다. 정겨운 강구항 구다리를 지난다. 서로 양보하며 건너야 하는 강구항 구다리. '강구'라는 지명도 강의 입구, 즉 오십천의 입구라는 뜻에서 왔다. 강구로 가는 첫발이자, 블루로드의 첫걸음 되겠다. 갈매기가 유영하며 먹이를 찾고 있다.
내 터전에 놀러온 손님을 맞이하듯 기인 대게거리의 명성에 걸맞게 강구의 갈매기도 손님을 맞을 때 두려움이라곤 없어 보이는 것이, 연신 사람들 머리 위를 가깝게 유영한다. 쉽게 먹이를 얻을 수 있는 것, 그들에게 장점이자 치명타가 될 수 있을 텐데...
강구항-대게거리를 출발해 강구교회 쪽 길로 항을 뒤로 하며 고불봉 길에 오른다. 마을 초입의 좁은 골목길은 약간 급경사다. 오름길에 일부러 만들어놓은 것 같은 정자는 눈요기요, 서비스인 셈이다. 심호흡과 함께 몸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강구마을'이다. 시선을 비껴가보니 거기엔 삼사공원이 동그마니 앉아있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도 발밑 풍치가 멋지다. 자, 이제 팻말 따라 발길 따라 오르기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바위는 없으나 산길은 산길이다. 누군가 그랬다. 오솔길은 다리에 무리가 없어 최상의 산행 길에 속한다고...한두 사람이 어깨를 마주하고 걸을 정도의 소나무숲길이 연이어진다. 소나무의 청신한 기운을 한 몸에 쓸어담으며 한적한 숲길을 걷는다.
금진도로를 지나자 강구항과 방파제며 삼사해상공원까지 관망하며, 봉화산 정상과 체육시설을 발치 끝으로 둘러보며 소나무그늘아래 벤치에서 잠시 쉬니 솔향기 무한포스 정기가 온몸을 엄습한다.
피톤치드의 정체를 만난다. 이렇게 1시간가량을 걸었나.. 금진도로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만난다. 시내길 이었다면 육교였을, 도로 위를 지나는 다리다.
구름다리부터 고불봉까지의 길도 별반 차이는 없으나 쉼 없이 오름과 내림을 거듭하는 길, 경사도가 낮아 걷기엔 최적의 길임에 분명하다. 쉼 없이 그저 무념무상을 허락하고 있는 길, 갈래 길도 많지 않은 길에 이정표도 잘 가꿔져있어 두렵지 않다. 그저 편안히 소나무 숲의 인도를 따르면 제2 경유지 고불봉을 만날 수 있다.
화림산과 무둔산의 산줄기가 뻗어내려 형성 된 고불봉은 235m의 높지 않은 봉우리다. 예전엔 망월봉으로도 불렸던 이곳은 동으로 풍력발전단지, 서로는 오십천과 영덕 읍내가 그야말로 한눈에 조망된다. 그뿐인가 남으론 강구항과 더 멀리 동대산과 그에 이어지는 산줄기들까지 뻗혀있는 산세 그대로가 들어오는 360도 광활히 펼쳐진 전망 봉우리. 고불봉은 예부터 영덕에서 전해 내려오던 영덕 8경 가운데 하나인 불봉조운(佛峰朝雲)에 해당한다. 영덕읍의 동쪽 우곡리 뒤편에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로 高不峯, 또는 高佛峯이다.
동해의 붉은 해가 심해 깊숙이 잠겨 있고, 그 붉은 기운만이 적막강산을 휘감을 때 한 바람 붉은 색 비단이 덮이듯, 새벽 구름에 싸여 있는 고불봉의 모습을 보고 불봉의 조운이라 한데서 해가 떠오르고 , 떠오른 해의 아침 햇살에 봉우리 위에 걸친 구름이 산 아래로 흩어지면서, 고불봉의 장엄한 자태야말로 부처님의 염화미소(拈華微笑)일 것이고, 희망의 표상이 되었기에 예부터 전해지던 영덕 최고의 미, 영덕팔경에 들었으리라...
고산 윤선도 또한 영덕으로 귀양온 후 고불봉에 올라 읊기를..봉우리 이름이/ 높은데 높지 않다는 고불봉(高不峯)이라듣는 이 모두가 괴상하다고 하지만/ 늘어선 봉우리 중 가장 높고, 특출하다네 어디에 쓰이려고 그렇게 구름 위 뜬 달을/ 쫓아 홀로이 외롭게 솟았나 아마 좋은 시절 만나서 한 번 쓰일 때는/ 저 혼자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 것이네.
고불봉에서 풍력발전단지 길 따라 산을 내려오면 이제부턴 다소 고단한 임도길이 이어지는데 그늘이 거의 없어 한여름에는 상당히 힘이 든다. 임도 중간 간간히 정자가 눈에 들어와 쉬어가라는 신호를 주기도 한다. 임도를 따라 조금씩 이어 오다 보면 영덕읍과 하저를 잇는 국도를 만난다. 다시 국도 따라 아스팔트길을 조금 내려가면 왼쪽에 풍력발전단지와 이어지는 임도 길이 나타난다. 이곳부터 풍력발전단지까지가 7.5km다.
걷는 것은 그곳에 사는, 또는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내가 지금 걷는 이 길이 지명이 어떠하며 위치가 어떠하며 풍광이 어떠한 지를 떠나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그것만이 가치가 있을 때가 있다. 왜 이리 힘들게 가고 있는지 무엇을 향해 가는지 의문이 필요 없을 때가 있다. 그저 길이 있어 그 길 위에 내가 놓여 있고, 나는 걸어야 하는 그럴 때가 있는 법이다.
걷는 것만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아름다운 꽃들이 지천에서 윙크를 건네는 곳으로 들어서자면 풍력발전단지가 가까워졌다는 신호가 된다, 내가 걸오 온 임도 약 5km 구간이나 된다. 풍력발전단지에 접어들면 곧 해맞이캠핑장이 나온다. 독특한 숙소동들에 반해, 하늘아래 알록달록 귀엽고 아기자기함에 잠시 포옥 빠져 헤어나질 못한다.
별반산봉수대. 블루로드 길에선 두 개의 봉수대를 만나게 되는데, 1구간에서 만나는 별반산봉수대와 3코스에서 만나는 대소산봉수대다. 봉수대는 주변 관망이 좋은 위치에 설치해, 밤에는 횃불을 들고, 낮에는 연기를 피워 변방의 위험한 상황을 알렸던 통신문화유산이다.
대소산봉수대를 중심으로 별반산외 2개가 더 있어 총 3개의 봉수대가 영덕 관내에 있다. 봉수대 맞은편으론 산중턱에 하얀 반원형 야외공연장이 보인다. 보름달이 뜨는 밤, 펼쳐지는 작은 콘서트를 비롯해 산과 바다를 노래하는 어울림이 펼쳐진다.
이제 풍력발전단지 궤도 중심부로 진입을 한다. 너른 단지의 아우라에, 회오리 같은 바람천국에 가로놓여지니 거대한 풍력기의 굉음조차도 자연의 화음처럼 정겨워진다. 블루로드방향으로 가자면 신재생에너지전시관과 신득청 가사문학비가 먼저 맞이한다. 외관에서부터 에너지의 무한 포스가 솟아 흐르는 신재생에너지전시관. 전시관을 둘러보기 위해 들르니 아니 이게 웬 떡 2층 창포족욕 체험장이 시원하게 개방돼 있다.
태양열을 이용해 창포물을 데워 족욕에 알맞은 온도로 전시를 위한 내방객등을 맞이해 시원한 족욕물로 지친 몸을 마사지해주고 있다. 3층 전시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천국, 미래 그린에너지 시대를 미리 선보여 주고 있다. 알록달록 에너지천국에서 잠시 기운을 북돋으며 에너지 투어를 즐겨본다. 팔팔한 기운을 새록 북돋워주는 것만 같은 신재생에너지전시관에서 싱싱하게 돌아 나오면 거대 입암에 새겨진 신득청 가사문학비인 '역대전리가'를 만난다.
일찍이 고려 충숙왕 시절 창수면 인량리에서 태어나, 평산부원군까지 지낸 인물인 신득청선생은 고려말 공민왕의 실정을 간언하고자 이 '역대전리가'를 지어 올렸으나 조정은 더욱 혼란지색에 빠져 결국 패망하고 만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신득청은 이게 비분강개해 동해바다에 몸을 던진다.
역대전리가'는 한국문학사에 있어 가사문학작품의 효시로 재조명되어 우국충정으로 되새겨지고 있다. 영덕이 낳은 인물, 그리고 문학의 본산지 영덕을 가리키는 귀한 가치를 느끼며 거대한 원형극장 같은 풍력발전단지의 메인 테마에 다가간다.
바람을 이용한 24기의 바람돌이들과 함께 거대한 단지에 들어선 여러 가지 감흥의 정원들, 공원들, 전투기비행장과 축구장 등등의 단지시설물들과 편의시설들과 야외공연장, 별반산봉수대, 해맞이오토캠핑장과 대표문인들의 시비까지, 그야말로 영덕의 에너지와 전시, 문화와 역사, 스포츠가 종합예술단지로 함께 어우러진 총망라된 살아있는 영덕의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단지의 입구 쪽까지 나아가니 또 하나의 강호와 풍류에 우국지정을 더한 조선최고의 문인 고산윤선도의 기품서린 시비를 만난다. 팍팍한 오르막이 연속하던 블루로드 A코스도 이제 막바지로 치닫는다. 내리막길을 걸어서 내려간다. 동해바다 내음의 자취를 훑어 내려간다. 아, 바람의 거대한 화원을 벗어나자마자 동해의 바다가 지척에서 마중을 나와있다. 이 바람에 실려 가벼이 너른 바다 품에 안착하고픈 심정이다. 마지막 고지인 해맞이공원의 랜드마크인 창포등대가 코앞에 어른거린다.
동해바다의 잔물결도 함께 말이다. 바람길을 따라 연이어 왔는데 여기에 또 하나의 광활한 장관이 펼쳐져 있다. 이번에는 바다를 향해 내리달리는 잘 가꾸어진 미로공원 같다.
감히 말하고 싶다. 영덕에서 블루로드를 따라가 보지 않고서 영덕을 안다고, 영덕의 진가를 논할 수 있다고 자부하지 말기를... 영덕의 블루로드, 영덕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영덕의 길_ 내 영혼의 길을 걸었다. 바다를 꿈꾸는 산길이자 빛과 바람의 길 블루로드 넘버1